82년도 뉴델리 대회에 언니 최윤정과 출전해 삼관왕을 차지했던 그녀는 4년 만에 컴백 대회 2연패에 도전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그녀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 그만큼 심적 부담은 컸다.
9초 50m.
82년도 아시안게임 때는 저의 큰 경쟁 상대인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언니가 비타민을 먹으면 저도 비타민을 먹어야 되겠다.
내 라이벌이 옆에서 뭐 먹고 있으니까 그 당시에는 저도 막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그랬는데요.
86년도에는 제가 대학교 1학년생이었었어요.
그래서 선수 나이로는 좀 많은 나이였었고, 또 그 당시에 4년 뒤에 2연패를 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20m 남았습니다. 마지막 스퍼트
200m 배영 그녀의 마지막 경기였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겠죠? 예 우승 가능합니다.
5m 3M 채윤이 볼 터치
마침내 우승 최윤희 선수는 대회 2관왕이 됐다. 그녀는 결국 5천여 명의 관중들이 쏟아내는 박수 속에서 물을 떠날 수 있었다.
2연패 100m
참으로 화려한 퇴장이었다.
제가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 시합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밖에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온 힘을 다해서 진짜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힘 나올 수 없더라도 내 힘을 가진 힘을 거기에서 배형 200m 시합에서 다 발휘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고요.
서울 아시안게임은 당시 아시안게임 사상 최대 규모인 이십칠 개국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중공을 비롯해 당시 교전 중이었던 이란과 이라크까지 참가, 명실상부 최고의 대회를 이뤄냈다.
16일 동안 화려하게 펼쳐진 경기. 서울 아시안게임은 수많은 스타와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쳐 금메달 93개를 차지, 종합 2위의 쾌거를 이뤄냈다.
1위 중공에 금메달이 겨우 한 개 뒤진 성적이었다.
네 안쪽으로 하우스 슛 볼 볼닝입니다. 맞습니다.
2 대 1로 네 한국 황학지가 파키스탄을 눌러서 그래서 금
86서울아시안게임은 지금까지 최고의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88년 서울올림픽 리허설 격으로 열렸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에 준해서 모든 대회 준비를 했고 또 개최를 했고 또 우리가 성공적으로 치렀기 때문에 역대 아시안게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가장 성공적인 아시안게임이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고요. 실제로도 그 아시안게임이 개막식서부터 또 아무런 사고 없이 물론 이제 그 대회가 북한에 참가하지 않은 그런 아쉬움은 있습니다마는 하여튼 전반적으로 볼 때 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본격적으로 아시안게임이 궤도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아주 성공적인 대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