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미터 남았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겠죠?
예 우승 가능합니다. 5m 3M 최윤희 도울 터치 1위 최윤희 금메달, 아시아 2연패, 아시아 2연패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0.1초 길이로 따져서 15cm 찰나의 순간인 이 0.1초를 위해서 싸우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번 서울 아시안게임 수영에서 금메달 2개를 노리는 최윤희 선수도 이 0.1초를 단축하기 위해 거센 물살을 가르며 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집념과 극기의 현장 최윤회 선수의 24시를 취재했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그녀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이제 41일 뉴델리의 환희를 재현하고 서울 아시아드의 영광을 위해 달려온 지 언 4년 윤희는 이제 또 한 번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75m의 최인우 선수가 1위로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고 이어서 최윤정 선수입니다.
오코스의 최윤희, 오코스의 최윤희 단연 선두입니다.
오코스의 최윤희 단연 선두, 그리고 3코스의 최윤희 2위.
최윤희. 과연 금메달을 따느냐 최윤희 금메달 확실합니다.
최윤희 금메달, 최윤정 은메달 역시 자매 선수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동시에 땄습니다.
1분 06초 39 최윤희.
그로부터 4년 윤이는 많이도 변했습니다. 새침떼기 중학생에서 예비숙녀 대학생으로 변신한 윤희.
그러나 주위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은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가능성에 도전하겠다는 그녀의 집념.
오늘은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유 선생님이 어제보다 기록이 못하다고 야단치시는 바람에 삼십분이나 더 물속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순간 난 멈춰서는 안 된다. 뼈를 깎는 아픔이라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
이것만이 나의 갈 길이며 나의 존재의 의미이다.
3코스의 최윤희
내가 다시 아시아의 최고가 되는
이 금메달.
나를 위해서 난 지금 멈출 수가 없다. 0.1초
8m 남았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겠죠?
예 우승 가능합니다. 5m 3M 최윤희 볼 터치 1위 최윤희 금메달, 아시아 2연패 아시아 2연패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아시아의 최정상 최윤희 선수가 우리의 기대대로 수영 배영 100m에서 금메달을 건져 올렸습니다.
여경에 여경을 거듭하면서 이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면서 금메달을 딴 가, 또 태극기가 게양되면서 애국가가 울려퍼졌던 이 감격스러운 시상식 광경.
다시 한 번 잠시 보시겠습니다.
여자 100m 대형 결승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긴장을 하게 되면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출발했습니다. k는 앞으로 아직까지 스트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됩니다. 태윤이 3레인 먼저 합니다.
아직까지는 상당히 좋습니다. 바로 옆으로 4레인에 일본의 오노 선수가 달고 있습니다.
오노 선수 태윤이 25미터 남았습니다. 오호 선수가 스포트가 좋은데요.
최윤희 약 20미터 남았습니다. 약 7m 남았습니다.
최윤희 3미터 확정적 1위는 확정적 최윤희 같이 1위 금메달 최윤희 아시아를 2번이나 재패했습니다.
기록도 아주 좋습니다. 금메달 잘 기록 1분 4초 6입니다.
아시아 최고 기록 1분 4초 02입니다.
아주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이너라고 불리는 최윤희 선수.
과연 그는 누구인가? 과거와 현재를 전해드립니다.
뉴델리 탈카도라 수영장의 삼관왕 최윤희가 다시 한 번 정상에 우뚝 섰다.
제 구회 아시안게임에서 뉴델리의 에이피 특파원에게 센세이셔널 최윤희, 윤정 자매라는 기사를 타전케 했던 두 주인공 중의 동생.
그 최윤희가 내 해가 지난 지금 흘러 돌아와 이제는 서울의 하늘에 다시 한 번 애굽가를 울려퍼지게 한 것이다.
천구백 육십칠년생인 최윤희는 다섯 살 되던 해 당시 유치원생이던 언니를 따라 수영을 시작했다.
국민학생 시절부터 이미 여러 번 우승을 차지했던 최윤희의 가능성은 그 당시부터 쉽게 예상될 수 있었다.
이들 자매의 라이벌 의식은 그해 11월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렸던 제9회 아시안게임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최윤희, 윤정 자매가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일본 선수를 제치고 각각 세 개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후 세계로의 도약이라는 꿈을 안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그녀는 LA 올림픽 예선 탈락 허리의 통증과 같은 괴로움이 겹쳐
최윤희는 선수 생활을 좌우할 정도의 깊은 갈등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좌절만 하고 있기엔 뉴델리의 혼인은 너무도 생생하였다.
85년 3월 최윤회는 재기를 위해 귀국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이제 좌절과 고통의 시기는 지나갔다.
최윤희는 또 한 번 아시아 여자 수영의 정상을 뒤집어선 것이다.
자 공에 떠나가는 응원의 소리 채빈이 3미터 확정적 1위는 확정됐습니다.
마지막 꼴인 장면 200미터 배경 때죠. 끝내 그 울음을 터뜨리는 것 같은데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주위에서 그런 말이 되게 많았어요. 제가 이연패를 못할 거라는 말 되게 많았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해냈고 또 선생님한테 너무 감사드리고 그래가지고 울음이 나왔어요.
실례 질문 같은 거 남자친구 있어요. 연세대학이 아마 남녀공학이지
네 남녀공학인데 그렇게 제가 시간이 없었고요. 또 선생님께서는 그 아시안게임 끝나고 이제 모든 걸 다 해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똑똑하고 착한 사람 그런 사람이야.
요즘은 자유 결혼 유행 아닙니까? 이
그렇죠 좋은 사람이 있으면요.
아시아의 인어, 온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긍지를 심어준 최윤희 양은 영원한 한국의 여인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