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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88서울올림픽

김영성 기자와 서장훈 선수가 함께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와 함께해 온 서울시 체육시설]의 세번째 에피소드!

1988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과 서울을 세계 스포츠 무대에 우뚝 서게 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이 대회가 서울과 대한민국에 남긴 의미와 감동을 다시 느껴보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스포츠와 함께 해온 서울시 체육시설


3번째 에피소드 입니다


자  오늘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가장 빛났던 순간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당시에 서장훈 씨는 중학생이었나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


우리 농구 여자대표팀 선수들 파트너로 같이


연습 게임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농구한 지 얼마 안돼가지고


잘 못해서 팀에서는 그냥 벤치를 달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운동선수로서


서울올림픽은 정말 흥미로운 이벤트였을 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88 서울올림픽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서장훈 씨와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은


냉전 시대의 막바지에 열린 대회로



총 160개국이 참가해서


당시 역대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한


올림픽으로 기록됐습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동서 화합의 무대가 됐고


또 대한민국의 발전한 모습,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혹시 서울올림픽 개막식 하면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일단 굴렁쇠 소년이 기억이 나고요


그 다음에 손에 손잡고도 기억이 나고


이제 호돌이, 그 다음에 성화


(점화를) 올렸던 것도 기억나고요


저희 학교인 휘문중학교가


잠실에서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느낌들이 있었죠


좀 전에 굴렁쇠 소년 이야기 하셨는데


그 굴렁쇠 소년의 이름이 윤태웅 군이었어요


1981년 9월 30일 이거든요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날이고


그때 태어난 어린이들 중에서


캐스팅을 해서 참여를 시켰던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도


고 손기정 옹이 성화 봉송 주자로 나오셨던


장면이 기억에 선한데요


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아니겠습니까?


당시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제 치하였기 때문에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셨잖아요


금메달을 따고도 일장기가 가슴에 있는 것 때문에


시상대에 위에서 웃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던 사진


그 장면이 기억이 나는데


그 한을 성화봉송 하시면서


풀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뭉클했습니다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인 사실을) 일본기자한테 들키셨대요


그래서 (선수촌) 촌장님 말씀이


본의 아니게 춘애 니가 최종 주자를 해야겠다


그래서 내일 새벽 6시에 나와서 연습을 한번 해라


한번 연습하고 하게 됐는데 그게 상당히 무거워요


그리고 불꽃 튀고 이러는 거라


그거 들고 뛰는 거에만 집중했었죠


나중에 영상보니까 정말 영광스러운 일을 내가 했구나 이렇게 깨달았죠


저 때 성화봉송 얘기를 하니까


그 장면이 떠오르는데 당시 마지막에


성화를 점화할 때


‘거기 있던 비둘기들이 타서 죽었다’ 라는


그런 얘기가 뭐 사실이다 아니다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거든요


사실이었습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잖아요


그런데 그 전에 올림픽마다


개막식에서 비둘기를 하늘에 날려보내는


개막식에서 비둘기를 하늘에 날려보내는


개막식에서 비둘기를 하늘에 날려보내는


의식들이 매 올림픽마다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88 서울올림픽 때


(비둘기들이) 성화 점화 순간에 성화대에 앉아 있었어요


그걸 쫓아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냥 불을 붙였는데


앉아있던 비둘기 몇 마리가


좀 안타까운 화를 당했는데


그 이후에 동물학대 논란이 생기면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부터는


비둘기 날리는 행사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자 이제 경기장별로 명장면을 만나보겠습니다


육상 100미터 결승은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은 대결이었죠


캐나다의 벤 존슨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만


이후에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서


메달이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큰 사건이었죠


당시 칼 루이스가 은메달에서 금메달로 승격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었는데요


벤 존슨은 이후에 금지약물 근절 캠페인


홍보대사로 잠실을 다시 찾은 적이 있습니다


잠실하고 인연이 있죠


저도 저 경기가 기억이 나는데


칼 루이스라는 우리 선수가 워낙 유명해서


다들 칼 루이스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 모르는 선수가 우승을 해가지고


굉장히 놀라웠었는데


나중에 또 약물(사용)이 걸려서


칼 루이스만 억울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보여드리는 것이 칼 루이스 거는 아니고


벤 존슨이 반도핑 홍보대사로 잠실을 다시 찾았을 때


풋프린트를 찍어서 이렇게 기증을 한 건데


생각보다 발은 크지 않습니다


서장훈 선수의 발이 훨씬 클 것 같은데요


키가 제가 훨씬 크니까요


잠실종합운동장에서는


육상 외에도 다양한 종목들이 개최되는데요


저는 한 게임 한 게임 다 기억이 나는데


대진표도 참 센 선수하고만 붙었어요


그렇지만 그 큰 선수들을 


(올림픽을) 우리나라에서 하기 때문에 


더 쥐잡듯이 몰아붙였죠


조금 체력이 버텨줬으면


상대 선수도 워낙 잘 하니까 절 이겼겠지만


체력이 조금 더 버터줬으면 하는


그게 아쉬움이 많이 남죠


네, 김광선, 백현만 선수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서장훈 선수는 혹시 88 서울올림픽 때


잠실종합운동장에 혹시 와 본 기억이 있으세요?


아뇨, 제가 그때 아까 말씀드렸지만 농구(하던 때라)


학교에서 연습하느라고


그 당시에는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했기 때문에


저희가 연습 안 하고 보러 가거나 이럴 수는 없었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 처음 하는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표가 거의 다 이미 팔려서


갈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운동선수라고 그냥 보여주거나 뭐 이런 것도 없었고


그래서 TV로 봤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활약도 빛났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 보니까


예전에 어렸을 때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자, 여기서 제가 또 문제 하나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올림픽 구기종목의 첫 금메달은


어느 종목에서 나왔을까요?


아, 구기종목의 첫 금메달


여자 핸드볼


역시 서장훈 선수답습니다


왜냐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게 여자 핸드볼이 아니면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우리 농구선배님들이 과거에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신 적은 있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이고


여자 핸드볼이 그 당시 (메달을)땄던


88 올림픽 때 금메달 따셨던 게 기억납니다


이게 88 서울올림픽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고요


그 금메달이 그 다음 회, 다음 올림픽


92년 바르셀로나 대회까지 이어집니다


한국 여자 구기 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던 여자 핸드볼이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16일간의 대장정의 끝나고


우리나라는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 개로 종합 4위를 기록했습니다


88 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당당하게


세계 스포츠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혹시 서장훈 선수에게는


서울올림픽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88 서울올림픽이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는 걸 보면서


나중에 저도 꼭 올림픽에 나가서


한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좀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당연히 제가 올림픽을 한번 나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올림픽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라는 기억이 저한테 좀 있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한단계 더 도약을 했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올림픽 이후 잠실종합운동장이 


어떤 모습으로 활용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